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 전략 공세 작전/작전 경과 (문단 편집) === 무단장 전투 === 8월 13일 저녁, 무단장을 향한 소련 제1적기군의 공세는 타키가와 소좌의 대대가 후아린에서 공세를 차단함으로서 잠시 주춤했다. 그 동안 소련 제5군은 모타오신에 친 일본군의 방어망을 뚫어버리고 무단장 동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많은 병력을 잃었지만 아직 건재했던 일본군 제126사단과 제135사단은 일본 제5군의 명령에 따라 8월 12일 1200시에 무단장으로 후퇴했다. 제126사단은 도시 남서쪽에 자리를 잡고 사실상 대대급으로 축소되어 버린 제277연대를 잉치툰 남쪽에, 1개 대대를 잃은 제278연대는 남서쪽에 제279연대는 북쪽의 쑹타오링과 371고지에 배치하며 방어선을 구축했다. 사단 포병연대는 쑤타오링 서쪽에 위치하여 371고지를 사수하는 화력을 제공할 것이었다. 자살공격대는 개인호를 파고 땅 속에 숨어서 예흐호에서 오는 소련군을 급습할 것이었다. 일본군 제135사단은 무단장 북소쪽에 위치해 후아린에서 예흐호로 가는 길을 막으려 했다. 1개 포병대대가 증원되었으며 대대급으로 병력이 축소된 제370연대는 좌익에 위치했고 제369연대는 1개 대대를 전방에 1개 대대를 예비대로 배치한 후 공병중대를 배속받아 우익을 지켰다. 타키가와 소좌의 대대는 제135사단 후방에 위치해 후아린에서 오는 소련군에게서 사단을 지키려 했다. 야포 방열과 참호선 구축은 8월 13일 저녁에 끝났지만 시간 부족으로 이래저래 빈틈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철조망과 대전차 방해물, 그리고 부족한 야포를 가지고 있었다. 제126사단은 그저 20문의 야포만, 제135사단은 10문의 야포만 가지고 있었다. 대전차포는 한 문도 없었으며 손으로 다 셀 정도의 전차만 있었다. 8월 14일 아침, 제1적기군 소속의 제257전차여단이 제26소총병군단으로부터 2개 돌격포 대대와 제300소총병사단과 제22소총병사단의 선견대를 배속받아 증강되었다. 여단장 아니쉬치크 중령은 후아린 역을 재공격하라는 명령을 갱신받았다. 14일 오후, 후아린 역을 확보하려고 오던 타키가와 소좌의 대대와 소련 제257전차여단 소속 전차 3대가 마주쳤다. 타키가와 대대는 이 전차 3대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제135사단의 우익에서는 14일 내내 소련군의 대공세는 오지 않았다. 이는 소련군이 공세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어선을 건드려 보는 소련군의 소규모 공격은 계속되었으며 일본군은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14일 저녁, 제257전차여단과 제22, 300소총병사단이 후아린에 도달했다. 도로가 좁은 관계로 사단들의 집결 시간은 계속 느려지고 진격 대열 동안 무척 좁아서 사단 병력들과 차량들은 일렬로 늘어진 형국이 되었다. 게다가 일본군이 무단 강의 모든 다리를 파괴하는 바람에 행군 속도는 계속 늦어졌다. 제1적기군 사령관 벨로보로도프는 제257전차여단에 나머지 부대들이 후아린을 포위할 동안 일본군 방어선을 돌파하라고 명령했다. 벨로보로도프는 강 양안에서 일본군을 협격해 포위할 생각이었다. 8월 15일 아침, 제257전차여단이 일본군과 교전을 시작했을 때 제300소총병사단과 제22소총병사단, 제77전차여단이 후아린에 도착했다. 그들의 상관인 제26소총병군단장 스크보로체프 중장은 즉시 두 축선에서의 공세를 15일 오후까지 준비했다. 제22소총병사단은 무단장 북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후아수링츤에 도착했다. 그리고 북서쪽에서 도시에 대한 공세를 준비했다. 제257전차여단과 제300소총병사단은 후아린과 예흐호 도로의 일본군 방어선을 오후에 공격할 것이었다. 제22소총병사단의 제1049소총병연대와 훈련대대는 [[SU-76M]] 자주포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사단 우익에 있는 츠메이홀로에 돌파구를 만들고 무단 강을 건너며 무단장 동부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제1051소총병연대는 자주포 대대와 제257전차여단의 지원을 받으며 예흐호 역인 사단 좌익을 무단 강을 건너며 공격해 도시 남동부로 진격했다. 제52박격포여단과 제54방사포연대가 지원했다. 이 합동 공격은 타키가와 소좌의 대대를 츠메이홀로로 퇴각하게 만들었고 소련군은 대대의 모든 수비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무단장을 공략하기에는 아직 힘들었다. 너무 좁은 진격로와 영 좋지 않은 도로 상황 때문에 사단 전체 병력이 공세에 참여할 수 없고 조금씩 축차투입만 하다 막혀버릴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제1적기군은 동쪽에서 예흐호에 접근하던 제5군 소속 제65소총병군단과 접선했다. 그 무렵 제300소총병사단은 무단장을 향해 계속 힘든 진격을 하고 있었다. 벨로보로도프는 공세 중인 제300소총병사단에 대한 현지 시찰을 나갔다가 사단장 체레바노프 소장이 진두지휘하다 중상을 입은 걸 보고 군단장 대리로 나온 루뱌긴 대령에게 사단 지휘를 맡겼다. 한편 파닌 중령의 제1049소총병연대는 예흐호 역으로 진격하면서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군 대전차 자폭조들을 처리했다. 15일 밤, 제300소총병사단, 제257전차여단, 제77전차여단은 츠메이홀로 북쪽으로 가는 5킬로미터 폭의 진격로 하나를 더 열었다. 벨로보로도프는 사령부로 돌아와 제22소총병사단이 무단 강으로 중화기를 더 옮기기 힘들어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제22소총병사단 소속 제221, 246소총병연대는 무단장 북쪽 4에서 5킬로미터 지점에 있었지만 전차와 자주포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공격이 지연되고 있었다. 22소총병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벨로보로도프는 8월 16일 아침에 강 양쪽에서 협격 공세를 가할 계획을 수립했다. 군 사령부 직할의 포병들이 무단장으로 준비 포격을 한 이후 제때 도착한 전차와 돌격포, 자주포들이 양 사단에 합류할 것이었다. 제1적기군의 군대가 14일과 15일 사이에 후아린 남쪽에서 진격이 지체될 동안 제5군은 무단장 동쪽에서 공세를 준비했다. 8월 13일 저녁에 제218전차여단과 제395돌격포연대를 대동한 제144소총병사단과 제210전차여단과 제479중돌격포연대를 대동한 제63소총병사단이 쑤타오링 동쪽 2킬로미터 지점과 371고지 남동쪽 3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제144소총병사단은 도로 북쪽으로 부대를 배치하고 제63소총병사단은 도로 남쪽에 자리를 잡았다. 8월 14일 1100시, 소련 포병들이 쑤타오링 북쪽 언덕으로 대대적인 포격을 가해 일본군 포대들을 지워버렸다. 2시간 후에 소련군은 고지로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218전차여단은 보병 지원을 받으며 밤새도록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제371고지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1500시 이후 일본군은 전멸했다. 잠시 후에 제144소총병사단 병력들은 제371 고지를 점령했다. 그 동안 제210전차여단과 제63소총병사단은 쑤타오링 고지에서 일본군 제279연대와 격전을 벌였다. 처음 공세로 소련군이 고지를 점령하는 데 실패하자 4시간 동안 고지로 소련군의 포화가 쏟아졌다. 63소총병사단 소속 제226소총병연대가 고지를 점령했다. 저녁에 쑤타오링 고지는 소련군의 손에 떨어졌다. 일본 잔존병들은 쑤타오링 마을로 도망친 후 중야포의 지원을 받으며 고지를 탈환하려 했다. 일본군은 여기서 소련군 전차 6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밤 동안 일본군 제126사단의 대전차 자폭조 대대가 고지로 덤벼들었으나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제279연대는 고지 탈환에 실패했다. 14일 밤 내내 소련군은 어떻게든 고지를 탈환하려는 일본군을 상대했다. 고지 위로 옮겨진 전차들과 야포들이 고지 아래의 일본군 거점에 포화를 퍼부어 일본군의 25개 포대를 날려버리고 전차 4대와 대전차포를 파괴했다. 포격을 쏟아붓는 동안 제63소총병사단은 고지 아래로 공세를 재개했다. 제63소총병사단은 일본 제278연대의 하부 제대들을 포위하고 사단 사령부와의 연결을 차단했다. 소련 전차들은 제126사단 사령부에 도달해 포화를 퍼부었는데 사령부에서 튀어나온 대전차 자폭조들에 의해 전차 5대를 잃었다. 대전차 자폭조의 공격이 효과를 보자 기겁한 제210전차여단 전차들은 쑤타오링으로 잠깐 후퇴해 재정비를 했다. 사령부까지 공격을 당하고 사단 소속 야포가 죄다 날아간 일본 제126사단은 결국 1800시에 최후의 돌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126사단 병력들은 옥쇄하며 산화하겠다는 생각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며 최후의 돌격을 주저했다. 일본 제126사단의 완강한 저항은 소련군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어서 메레츠코프 원수는 제5군에 내린 명령을 수정해야 했다. 메레츠코프는 제5군에 일본군의 저항이 강한 무단장 남쪽은 우회하고 그곳에는 일본군의 후퇴를 차단하고 제1적기군과 협동한 병력만 남겨 놓은 채 떠나라고 했다. 8월 15일 1645시에 명령이 하달되었고 제5군은 무단장 남쪽을 떠나 닝안에서 쿠린을 통해 장춘으로 향했다. 8월 16일 아침, 제1적기군 소속 제65소총병군단은 무단장을 동쪽과 남동쪽에서 공격했고 그 동안 제26소총병군단은 남서쪽과 북동쪽에서 무단장으로 치고들어갔다. 제26소총병군단은 예흐호를 확보하고 무단강을 건너 무단장으로 돌입했다. 예흐호가 제257, 77전차여단에 의해 확보되자 두 전차여단은 후속하던 제26소총병군단에 예흐호를 넘겨주고 제5군의 65소총병군단을 지원하려 달려갔다. 그 동안 벨로보로도프는 16일 0700시에 일본군 제135사단을 끝장내 버릴 공세를 준비했다. 무단강 동쪽에서 제300소총병사단은 2개 전차여단의 지원을 받으며 제1049소총병연대를 우익에, 제1051소총병연대를 좌익에, 제1053소총병연대를 예비로 두고 예흐호 북쪽에서 무단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무단강 서안에 있던 제22소총병사단은 공세를 위한 휴식과 재정비를 끝낸 후 무단장을 북쪽과 북서쪽에서 공랙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본 제5군은 재앙에 직면했다. 그 전날 제1방면군 사령관 기타 세이이치 대장은 제5군에 무단장을 수비할 수가 없으면 퉁화나 헹타오호츠로 후퇴하라고 명령했었다. 제5군 사령관 노리츠메 시미즈 중장은 명령을 받고 8월 15일 1200시부터 헹타오호츠로 자정 이후에 철수할 것을 결정했다. 철수 계획에 따라 제126사단은 무단강을 건너 예흐호 남쪽으로 철수하고 제135사단은 무단강을 건너 예흐호 북쪽으로 철수할 것이었다. 만주국군 사관생도들이 예흐호 동쪽으로 가며 제5군의 철수를 후방에서 엄호할 것이었다. 계획은 좋았지만 소련군의 공세는 일본군이 철수를 마음먹었을 때 들이닥쳤다. 제126사단의 제278연대와 타키가와 대대, 제135사단은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후퇴를 실행에 옮길 겨를이 없었다. 제126사단은 8월 15일에 제278연대가 고립당한 채 흐싱링 다리를 건너 빠져나갔다. 제135사단은 새벽에 빠져나갔고 타키가와 대대가 후방을 맡으며 소련군의 공세를 받아 내야 했다. 16일 0700시, 무단장을 향한 소련군의 마지막 공세가 타키가와 대대를 분쇄하면서 시작됐다. 무지막지한 포탄과 로켓들이 무단장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타키가와 대대의 생존자들은 이 불지옥 속에서 어떻게든 방어 위치를 지킬려고 애를 썼다. 0900시에 파닌 중령의 제1049소총병연대가 예흐호 역을 완전히 확보했다. 제77전차여단의 전차들이 무단 강 다리를 넘어 무단장에 돌입했다. 이 다리는 일본군이 미처 파괴하지 못한 다리였다. 한편 제1051소총병연대는 무단강을 도하하며 죽어라 저항하는 일본군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0900시에 제22소총병사단도 북서쪽에서 무단장으로 돌입했다. 0600시에 무단장으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한 사단은 제221소총병연대를 선봉으로 무단장 시로 0900시에 공격을 시작하며 무단장 역을 목표로 진격했다. 이 공격은 일본군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0920시에 무단 강 북서쪽을 지키던 일본군은 시내로 후퇴했다. 제246소총병연대가 도시 북쪽에서 철도망을 따라 도시로 진입했다. 제300소총병사단도 곧이어 도시 진입에 성공했다. 제1049소총병연대는 1100시에 무단 강을 넘어 도시로 진입했고 제1053소총병연대는 츠메이홀로 남쪽을 통해 들어왔다. 잠시 후에 제1051소총병연대는 제1049소총병연대와 합류했다. 1300시에 일본군의 후방 부대들이 동쪽 남쪽 북서쪽에서 동시다발적 공격을 당하며 궤멸당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건물 지하실 등지로 숨어들어가며 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끝까지 저항했다. 제300소총병사단은 건물 하나하나를 확보해 가며 오후까지 무단장 남서부를 확보했고 제22소총병사단은 무단장 서부를 확보했다. 제300소총병사단이 무단 강을 건너는 동안 제257, 77전차여단은 남쪽으로 가서 제5군 소속인 제144소총병사단과 합류했다. 이 부대는 무단장 남쪽 3킬로미터 지점의 예흐호 산을 합락하고 무단장 동남쪽으로의 일본군 탈출로가 될 다리를 무너트렸다. 8월 16일 1000시에 소련 제65소총병군단은 예흐호 남서부를 완벽히 확보하고 일본군 제278연대의 잔존 병력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1200시에 일본군 제278연대의 잔존 병력들은 연대장 야마나카 하지마 대좌가 든 연대기 아래로 몰려들었다. 대좌는 연대기를 불태우며 광신적인 부하들을 이끌고 소련군이 몰려오는 남쪽으로 돌격하다 전사했다. 한편 제3대대장이었던 우에다 소좌는 소련군을 노려보며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했다. 제278연대가 전멸함으로서 소련군은 무단장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4일간의 무단장 전투에서 제1적기군의 빠른 진격 속도는 일본군의 무단장 방어 계획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일본군 제126, 제135사단은 병력을 계속 손실당한 채 무단장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제124사단은 그래도 자리를 지키며 소련 제5군의 공세를 저지하려 했지만 역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제126사단은 2050명이 전사했고 제135사단은 3000명이, 일본 제5군 전체로 따지면 2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9300명이 전사했다. 86문의 포와 80문의 박격포가 박살났다. 소련군은 무단장 전투에서 일본군 40000명이 죽었다고 발표해지만 글랜츠는 일본 쪽 통계가 더 정확한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 제1방면군 사령부는 7000명에서 10000명의 소련군 사상자를 발생시켰다고 발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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